우리 내외는 참 사랑했다.
금홍이와 나는 서로 지나간 일은 묻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라야 내 과거가 무엇 있을 까닭이 없고
말하자면 내가
금홍이의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한 약속이나 다름 없다.

더뷰스 영화읽기 '금홍아 금홍아' : 시인 이상에 대한 뜻밖의 발견들

영화 '금홍아 금홍아' 속의 금홍 역을 맡은 이지은.
영화 '금홍아 금홍아' 속의 금홍 역을 맡은 이지은.

 

영화 '금홍아 금홍아'(1995, 김유진 감독)를 보았다내 생각인데, ()는 가장 영화화되기 어려운 소재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삶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일 또한 그런데, 외견으로 드러나는 장면들은 그가 지닌 시적인 것을 더욱 모호하게 감춰버리는 것 같다.

이상은 없고 피상적 이해 속에 건져올려진 불편한 피사체만이 렌즈 안에서 끝없이 경박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시인에 대한 이런 인상이나 견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를 탓할 까닭은 없다. 그저 그가 바라보았을 금홍(당시 23세의 이지은이 열연했다. 그녀는 그해 신인상을 휩쓸었다)을 눈앞에 데려와준 것에 감사한다.

이지은이 그 뒤 무엇을 했나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파란 대문'을 찍으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고, 이후 벤처사업가와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으며 강남에서 어린이미용실 '지아모'를 창업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미 딸이 있는, 술집여자

21세의 나이에 김해경(이상의 원래 이름)은 각혈(咯血)을 하기 시작했다. 폐결핵이나 폐종양 같은 질환을 앓았을 것이다. 각혈을 진정시키려 황해도에 있는 배천(白川이라 쓰고 배천이라 읽는다)온천을 찾아갔다.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1932년쯤(23세때)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 온천은 500년전부터 알려진 명소로, 북한 천연기념물(1980년 지정) 온천이다. 라듐 함유량이 높은 알칼리성 온천으로 규폐증, 기관지염 환자들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이 이용했다.

거기서 술집여자인 20세쯤 되는 금홍을 만난다. 스물 셋이 스물을 만난 상황. 요즘으로 치면 비교적 어린 커플이지만, 김해경은 벌써 '죽음'을 앓고 있었고, 금홍은 17세 때부터 작부 생활을 했고 19세 때는 딸을 하나 낳은 여자였다.

당시 김해경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1929년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과를 수석 졸업했다. 졸업 작품으로 '수상(水上) 경찰서 겸 소방서 설계안'을 냈다. 3월 졸업과 동시에 월급 55(현재의 100만원 정도, 공무원 봉급이 100원쯤 되던 시절)을 받는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들어갔다. 19317월에 '조선과 건축'이란 잡지에 '이상한 가역반응'이란 시를 발표한다. 이 당시 그가 시인인 것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태양이땀에젖은잔등을내려쬐었을때그림자는잔등전방에있었다."와 같은 수수께끼의 문장들.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김해경이 이상이란 이름을 쓰게 되는 것은 경성고공 시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졸업 앨범에 이상이라는 필명이 나온다. 그러나 아예 이름을 이상으로 바꾼 것은 1932년부터라는 누이동생 김옥희의 증언이 있다. 배천온천에 갔을 때만 해도 김해경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름을 바꾼 까닭은, 공사장 노동자들이 '긴상(김선생님)'이라 해야하는데 착각으로 '이상(이선생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믿을만 하지는 않다.

건축가 이상이 배천의 금홍을 부른 것은 1933년 경이다. 요양을 갔다온 뒤 1년쯤 뒤다. 그해 이상은 백부의 양자로 들어갔으나 보름을 못견디고 집안을 뛰쳐나왔고 백부의 유산으로 청진동 건물의 1층을 전세 내서 다방 '제비()'를 차린다. 그리고 금홍을 마담으로 앉혔다.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24세의 이상과 21세의 금홍.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제비다방 시절

영화에서 이상의 배역을 김갑수에게 맡긴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연기를 잘 못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이상이 이후 세대에게 풍겨운 이미지를 김갑수는 아마도 갖고 있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기인으로서의 면모나 천재적인 번득임, 변덕스러움과 집요함, 특유의 언어감각과 시적인 것을 포착해 진열하는 능란함들. 시와 인간에게 서로 넘나드는 권태의 향기같은 것. 넘겨짚을 수 없는 진폭을 지닌 경박의 음산함까지.

금홍은 그가 마흔이 넘은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이상은 말한다. "나는 추호의 틀림없는 만 2511개월의 홍안 미소년이다. 그렇건만 나는 노옹이다." 금홍에 대해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내외는 참 사랑했다. 금홍이와 나는 서로 지나간 일은 묻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라야 내 과거가 무엇 있을 까닭이 없고 말하자면 내가 금홍이의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한 약속이나 다름 없다."

제비다방에는 작가 이태준, 박태원, 시인 김기림이 드나든다. 금홍은 다방 영업을 하면서 손님들과 바람을 피웠던 모양이다. 이런 일을 이상은 방조했다. "나는 금홍이의 오락을 도우려고 가끔 P(작가 박태원을 말하는듯)의 집에 가 잤다. 금홍은 술에 취해 자주 이상에게 손찌검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해서 이상은 폭력에 내맡긴 채 자학을 즐긴 정황이 있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문단의 사람들은 제비다방에 딸린 골방을 '도스토옙스키의 방'이라 불렀다. 이상은 이 방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고, 수염을 깎지 않은 채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매춘을 하는 금홍을 아무 감정 없이 지켜보기도 했다. 그의 소설들(지주회시, 날개, 실화, 봉별기)에 그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가 아예 이 포인트를 부각시켜 이상의 병적인 심리를 시적 천재성의 핵심 질료인 것처럼 스토리텔링한 것은 솔직히 말하면 끔찍한 일이다.

제비다방은 2년만인 19359월에 문을 닫는다. 어느날 금홍이 때묻은 버선을 윗목에 팽개쳐놓고 가출해버렸기 때문이다. 소설 '날개'의 유명한 첫 문장.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는 이 때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뒷 문장은 이렇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 유쾌하오." 뭐가 유쾌했다는 것일까.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오감도 파문과 성행위 중의 시낭송

제비다방이 망해가던 1934. 동거녀가 다른 남자와 '영업'을 뛰는 비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이상은 신문에 시를 발표한다. 오감도(烏瞰圖) 연작이다. 건축가의 상상력이 발동한 말이다. 조감도는 높은 곳에서 새가 지상을 내려다본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즉 시점 위치가 높은 투시도이다. 이상은 지상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그냥 모든 새가 아니라 '까마귀'라고 특칭했다. 그 까마귀의 눈에 세상이 어떻게 비칠까. 그 까마귀는 어떤 존재인가. 그 상식의 이탈에서 심오한 시적 질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7'오감도'가 발표된 조선중앙일보사(서울 조계사 앞 사거리에 있던 신문사로, 지금의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는 상관 없는 신문이다. 몽양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었다)에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영화 속에서 금홍이 이상의 몸 위에서 섹스신을 펼치며 숨차게 읽던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그 희대의 낭독을 했던 시가 바로 오감도 시 제1호다.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 시는 그렇게 읽힐 수 있는 언어구조물이 아니었다.

오감도는 30회 연작으로 실으려 했으나, 독자의 반발로 15회만에 도중하차했다. "무슨 미친 놈의 잠꼬대냐" "이상이란 작자를 죽여야 한다"는 폭언들이 담긴 독자투고가 쏟아졌다고 당시 학예문예부장이던 이태준이 증언한다.

그가 말한 13인의 아해는 무엇이었을까. 그 아해들은 왜 질주하고 있었을까. 왜 무서워하고 있었을까. 주관적 내면세계를 마치 요즘의 가상현실이나 게임의 한 장면처럼 드려낸 그의 시는, 당시로선 너무 새로웠기에 독자들은 그것을 ''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시대보다 너무 일찍 태어난 시였다.

제비다방 이후

이상의 소설 '날개'속에는 제비다방 시절 금홍과 동거하던 풍경이 생생하게 등장한다. 그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골방 속에 틀어박혀 금홍의 화장품 냄새를 맡기도 하고 돋보기로 햇살을 비춰 화장지를 태우기도 한다. 방안에서 뒹구는 백수남자가 자신의 매춘영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느낀 금홍은 아스피린을 주는 척 하면서 수면제를 준다. 이상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나무랄 뜻이 없다.

'날자꾸나'를 외쳤던 그의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시가 독자에게 이해되는 그런 순간이었을까. 처음에 느꼈던 금홍에 대한 열정과 사랑의 지점으로 돌아가는 희구였을까. 금홍과 이상은 둘 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상적인 꿈을 꿀 수 없는 생활'을 살고 있는 동행자였다.

식민지라는 시대의 암울에, 치명적인 질병의 남자와 육체를 방기한 여자의 상호 기탁이란 이미 그 이상 더 나아갈 수 있는 동행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의 시는 그런 절망과 불안의 내면을 건축가로서의 지적 프레임 위에 얹어 서슴없이 쏟아냈고, 시대는 몰이해의 반격으로 그것을 중단시켰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1935년 가을 제비다방이 문을 닫은 이후, 이상이 금홍을 다시 만난 정황은 없다. 그는 인사동에서 '카페 쓰루' 종로에서 다방 '69' '무기' ''을 열어보지만 모두 곧 문을 닫았다. 술집 여자인 권순옥을 만났으나, 그를 사모하던 친구의 얘기를 듣고는 두 사람을 맺어주는 일도 한다. 그해 말 구본웅의 부친이 경영하던 '창문사'의 문예담당으로 일을 한다. 여기서 구본웅의 이복 여동생인 변동림을 만난다. 무엇에 홀린 듯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황금정(을지로)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당시 이상은 황폐한 삶을 끝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는, 김유정에게 함께 자살하자는 제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죽기 싫다고 이별을 뒤집어쓴 김유정이 "통닭을 먹고 싶어서 못죽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영화 작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종이로 세운 비석, 아내는 정말 조류였던가 보다

그의 시 '지비(紙碑, 종이로 세운 무덤비석)'는 금홍에 대한 리포트라고 봐도 될 것 같다. 19361월 조선중앙일보의 잡지인 '중앙'에 발표했던 것이다.

지비(紙碑) 1

안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 그날에 해당한 한남자를 속이려가는것이다 순서야 바뀌어도 하루에한남자이상은 대우하지않는다고 안해는 말한다 오늘이야말로 정말돌아오지않으려나보다하고 내가 완전히 절망하고나면 화장은 있고 인상은 없는얼굴로 안해는 형용처럼 간단히돌아온다 나는 물어보면 안해는 모두솔직히 이야기한다 나는안해의일기에 만일 안해가나를 속이려들었을때 함직한속기(速記)를 남편된 자격밖에서 민첩하게 대서(代書)한다

지비(紙碑) 2

안해는 정말 조류였던가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하고 거벼워졌는데도 날으지못한것은 그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을바를때 벽한겹걸러서 나는 조롱을 느낀다 얼마안가서 없어질때까지 그 파르스레한주둥이로 한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 열고 창공을 쳐다보면서도 고운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않았다 안해는 날을줄과 죽을줄이나 알았지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지않았다 비밀한발은 늘버선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움방안에 조분내음새가 풍기고 날개 퍼덕이던 상처가 도배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수러기를 쓸어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을 얻었다 산탄 아아안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닫과같은 쇠를삼켰더라그리고 주저앉았었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내음도 나고 천근무게더라 아아

지비(紙碑) 3

이방에는 문패가없다 개는이번에는 저쪽을 향하여짖는다 조소와 같이 안해의벗어놓은 버선이 나같은공복을표정하면서 곧걸어갈것 같다 나는 이방을 첩첩이닫치고 출타한다 그제야 개는 이쪽을향하여 마지막으로 슬프게 짖는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이상의 죽음, 멜론이 먹고싶어

이상이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인내 시한은 딱 석달이었을까. 변동림과의 신혼생활은 193610월에 끝이 난다.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듯 일본으로 건너가버린다. 점점 악화되는 결핵을 느끼면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절망의 각도를 거꾸로 오르듯 문학적 열망은 타올라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일본에 간 것도 시인 김기림과 동행하여 그곳을 거쳐 프랑스로 가겠다는 야심의 발로였다고 한다.

1937212일 그는 불령선인(不逞鮮人, 질이 안좋은 조선인)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됐다. 그러는 와중에 병이 깊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937417일 새벽4시 부랴부랴 달려온 부인 변동림의 품에 안겨 그는 27년의 삶을 뒤로 하고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멜론이 먹고싶어"였다.

영화에는 이 에피소드가 변주되어 나온다. 이상은 금홍의 몸에서 멜론 냄새가 난다고 했다. 치마 속으로 들어가 멜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당시 멜론이란 과일은 흔히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귀족적인 취향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이런 기행(奇行)이 사실이라면, 마지막 순간에 금홍을 떠올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시인은 말이 없다.

이상의 삶은 한국문학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었다고 하고 이상의 죽음은 한국문학을 50년 후퇴시킨 치명적인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위대한 시인의 삶 속으로 불현듯 들어와 의미심장한 문학적 대상이자 질료로 자리매김한 파란만장한 여인 금홍은 이상의 빈 거울 저쪽에서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상을 생각하며 먼 그리움을 추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이상의 마지막 시는 '이런 시()'라는 작품에 있는 '시 속의 시'.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어놓고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영화 '금홍아 금홍아' 중에서.

 

땅에서 나온 큰 돌과 큰 길가에 버려졌다가 사라진 돌은 무엇일까. 이상이 쏟아낸 작품들, 특히 '오감도' 연작이 아닐까. 마지막 작문은 영화의 판단대로, 시대를 높이 떠오른 자가 내려다본 절망의 지형도인, 오감도를 태동시킨 금홍에게 보낸 한 가닥 순정한 고백이었을지 모른다.

더뷰스 영화리뷰 이빈섬 isom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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